딸과 함께 전 세계 누비는 오명주씨 가족

“배낭여행을 함께 하면서 모녀에서 친구가 되었어요”

엄마와 어린 딸이 떠나는 일본 배낭여행은 어떤 느낌일까? 오명주·한새얀 모녀는 일본 배낭여행만 3번을 다녀왔다. 그것도 각기 다른 테마로…. 이제 다른 사람에게 자신 있게 여행지를 추천해줄 수 있을 정도로 일본에 관한 한 전문가가 되었다. 새얀(16세, 고1)양은 일본어 실력도 수준급. 일본 여행에서 자신감이 생기자 유럽, 러시아에도 진출한 모녀 여행단이다. 사실 오명주씨는 아주 오래전부터 아이와 함께 떠나는 배낭여행을 꿈꿔왔다고 한다.

일본, 갈수록 새로운 나라

“제가 여행을 참 좋아하거든요. 대학생일 때는 여행 자유화가 되기 전이라 해외여행은 다닐 수 없었고, 대신 주말마다 부모님 몰래 국내 이곳저곳을 누볐어요. 결혼하고 나서 이따금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어찌나 가족 생각이 나던지요.”
오명주씨는 딸이 11살이 되자 바로 중국으로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다. 어린 딸을 책임져야 하는 여행이 부담스러워 패키지를 선택한 것인데 꽉 짜인 일정과 엉성한 프로그램 때문에 무척 실망스러웠다고. 그래서 그 이듬해에는 꼭 배낭여행을 다녀오리라 마음먹었다.
“사실 처음엔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 때문에 여행하고픈 마음이 별로 없었어요. 하지만 딸과 함께 하는 여행이다 보니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게 되더군요. 일본이 치안 하나는 참 잘 되어 있잖아요? 게다가 가깝고 여러 가지 볼거리가 있으니까, 그만한 데도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2003년 모녀가 나란히 배낭만 짊어지고 일본 나리타공항에 들어섰다. 일본에 대한 첫인상은 사실 조금 무서웠다고.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히라가나 한 자도 모르거든요. 한국에서 미리 약도를 준비해 갔는데도 지하철 입구조차 찾지 못하겠고. 게다가 사방이 일본어뿐이고 일본말만 들리니까 어린 딸을 데리고 당장 어디로 가야 하나 식은땀이 흐르더군요.”
그러나 배낭여행자가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은 바로 ‘용기’. 무조건 안내 데스크를 의미하는 ‘I’자만 찾았단다. 안내 데스크를 찾는 동안 다행히 지하철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이후부터 여행은 일사천리. 좀더 자유롭고 재미난 여행을 원하지만 차마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이렇게 조언한다. ‘10분만 헤매면 다 해결된다.’
그렇게 시작된 이 모녀의 첫 일본 여행은 도쿄, 오사카, 나라, 교토 등 문화재와 볼거리가 많은 주요 시 중심으로 10일 동안 진행되었다. 딸과의 배낭여행은 생각한 것보다 즐거웠고, 배울 것도 많았고, 행복했다. 중학교 수학교사인 오명주씨는 첫 일본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부터 방학 기간을 이용해 떠날 두 번째 일본 여행을 계획했다. 배낭여행을 하기 위해 꼼꼼한 준비는 필수. 미리 인터넷을 이용해 숙소와 탈것(JR패스)을 예약해 현지에 가서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만전을 기했다. 관광지 중심의 첫 여행에 대한 아쉬움을 보완하기 위해 두 번째 여행에서는 비교적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홋카이도 지방에서 오사카, 히로시마까지 일본 전국 일주에 도전했다. 도시와 도시 간 이동은 주로 기차와 야간버스 등을 이용했지만 시내에서는 자전거로 이동하며 교통비도 아끼고 여행의 맛을 살렸다. 이듬해에는 큐슈 지방만을 집중 공략했다. 온천으로 유명한 큐슈의 후쿠오카, 나가사키, 벳푸 등의 문화유산과 자연을 돌아보는 것이 세 번째 배낭여행의 테마였다.
“세 번째 여행은 비행기가 아니라 배를 타고 갔어요. 무조건 비행기가 더 빠를 것이라고 생각들을 하지만 공항까지 가는 시간, 수속을 기다리는 시간, 또 현지 공항에서 여행지로 이동하는 시간을 생각하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더군요. 물론 큐슈 지방을 여행하는 경우에 한해서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시간적인 면에서도 배를 이용한 여행은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그렇게 세 번에 걸친 일본 여행을 차곡차곡 정리해 <히라가나도 모른 채 떠난 일본 배낭여행>이라는 책도 펴냈다. 철저하게 사전 준비를 하고 발품을 많이 파는 것이 좀더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을 하며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무엇보다 배낭여행으로 맺어진 모녀간의 돈독한 애정은 그 후 유럽, 러시아, 필리핀 등 전 세계를 함께 누비는 원동력이 됐다. 이제 고등학교 1학년, 한창 사춘기일 새얀이는 엄마와 찰떡궁합. 아직도 엄마와 여행을 떠나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여행을 할 때마다 엄마와 더욱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친구들을 보면 엄마와 공통분모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엄마와 여행 이야기만으로도 밤을 지새울 수 있을 정도로 할 얘기가 많거든요. 엄마와 다음 여행은 또 어디로 갈까, 너무 기대돼요.”

오명주씨가 추천하는 안 알려진 일본 여행지 BEST 3

1. 다카치호

10만 년 전 아소산이 만들어질 때 형성된 계곡 지역이다. 특히 일본 건국과 관련된 신화의 땅이라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큐슈 미야자키현에 위치.

2. 미야지마섬

히로시마 앞바다에 있는 미야지마 섬은 옛날에는 사람이 사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을 만큼 고대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긴 섬이다. 섬 중심에 있는 미센산 원시림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히로시마 역에서 JR을 타고 미야지마 역에 하차, 역 근처에 있는 선착장에서 페리를 이용.

3. 가이유칸

동양 최대의 수족관. 3층에서 8층까지 전체가 수족관인데 그 규모에 놀라고 좀처럼 볼 수 없던 신기한 어족에 두 번 놀란다. JR을 타고 오사카항 역에서 하차. 오사카 항에서 5분 거리.

tip

1. 어린 자녀와 눈높이를 맞추자

아이를 위한답시고 너무 교육적인 측면만 생각해서도 안 되고, 내가 가보고 싶은 곳 위주로 코스를 짜는 것도 좋지 않다. 아이도 엄연한 나의 동행인이다. 어른 눈높이의 여행을 하루 했다면 그다음 날은 아이를 위해 놀이동산이나 만화박물관 등을 여행코스에 끼워 넣자.

2. 아이와 놀거리를 즉석에서 찾는다

아이가 심심해하지 않도록 다양한 시도를 한다. 예를 들어 오래된 성을 방문한다면 동화를 지어내 들려준다든지, 즉석에서 재미난 놀이를 제안한다. 육체적으로 고된 배낭여행에서 지치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3. 아이가 스스로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연습시킨다

얼마간 돈을 주고 시장에 가서 스스로 필요한 물건을 사게 한다든지, 아이를 앞세워 목적지를 찾아간다. 엄마만 따라다니는 여행보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여행의 즐거움을 알게 해준다.

이것만은 꼭 챙기자

1. 꼼꼼한 준비는 아무리 해도 모자란 법. 인터넷을 통해 숙소 예약과 차편 예약은 미리 마치는 편이 좋다. 저렴하고 안전한 유스호스텔을 이용할 것을 권한다. (일본유스호스텔협회 한국어 홈페이지 www.jyh.or.jp/kr)
2. 아이가 어릴 경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이름표를 꼭 준비하자. 한국 주소와 전화번호, 날짜별로 묵을 숙소 정보 등을 적어서 아이 목에 걸어준다. 얼마간의 비상금은 필수.
3. 여행수첩을 만들자. 넉넉한 크기의 수첩을 마련해 그날 다녀온 관광지 티켓이나 음식 영수증을 붙이고 여행 경로를 적어본다. 나중을 위해서도 유용한 정보가 될 것이다.

주말마다 박물관 여행 떠나는 오현애씨 가족

“박물관은 아이들의 훌륭한 놀이터이자 살아 있는 교실이에요”

오현애(46세)씨는 큰딸 은용이(18세)를 고2 때까지 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대신 주말마다 박물관 여행을 했다. 박물관에서 뛰어놀고 공부한 아이는 학원에 다닌 아이들 못지않게 학업 성적이 뛰어나고 또래 아이들보다 시야가 넓고 문화적 소양도 깊다는 것이 오현애씨의 자랑. 모두 박물관 여행에서 얻은 소중한 자산이다.

“박물관에서 모든 것을 배웠어요”

현재 월간지 <좋은엄마> 편집장이자 박물관 교육단체 ‘박물관 이야기’ 회장인 오현애씨는 둘째가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잡지사 기자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아이들 교육에 좀더 신경 쓰기 위해서였다. 공교육으로 채울 수 없는 부분은 엄마가 직접 가르쳐주고 싶었기 때문. 그러다가 우연히 한 여성단체에서 주최한 박물관 활용 교육에 관한 강좌를 듣게 되었고, 그때부터 오현애씨의 박물관 사랑은 시작되었다.
“그때 배운 걸 썩히는 게 안타깝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활용하고 싶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에 다녔어요. 우리끼리만 다니면 심심하니까 함께 수강한 엄마 가족들하고 같이 다녔죠. 다행히 아이들이 또래여서 소풍 다니는 것처럼 재미있었어요. 그때부터 주말마다 하는 박물관 여행이 시작된 거예요. 그렇게 취미로 시작한 게 지금은 박물관 전문 교사가 되었네요.”
오현애씨는 <박물관이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 <박물관에서 사회 배우기>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아이들과 박물관을 찾았다는 그녀. 큰아이가 한창 문화에 관심을 보일 때는 매주 박물관, 전시회, 공연을 보러 다니느라 바빴다. 서울에는 생각보다 박물관이 많다고 귀띔해줬다. 오현애씨를 만난 곳도 집 근처에 있는 호림미술관. 호림미술관은 사설 박물관이지만 규모도 크고 청자, 백자 등 조선시대의 유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알려지지 않은 작은 박물관일수록 더 재미있다는 게 그녀의 조언.
중학교 2학년인 둘째 딸 민영이도 요새 박물관에 빠져 있다. 어려서부터 엄마와 언니를 따라서 박물관에 놀러 다니더니 박물관 박사가 된 것. 다른 아이들은 모르는 유물도 ‘빠삭하게’ 알고 있는 민영이는 박물관에 다닌 뒤부터 학교 수업이 훨씬 재미있어졌다.
“사회 책에 나온 유물들이 친근하게 느껴져서 공부할 때 재미있어요. 그냥 사진으로 보면 시험 문제처럼 보이는데, 제가 한번 보고 온 것들은 친구처럼 느껴지거든요. 모르는 친구들이 저한테 물어볼 때는 기분도 좋고요.”
다양한 박물관에 데려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박물관과 친해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많은 아이들이 박물관을 지루해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 아이가 재미있게 박물관을 관람하려면 엄마가 욕심을 버릴 필요가 있다.
“보통 국립중앙박물관처럼 규모가 큰 박물관에 아이들을 많이 데려가잖아요. 그런데 아이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겨우 한 시간 정도밖에 안 되는데, 엄마들은 욕심을 부려서 한꺼번에 전시실을 다 보여주려고 하니까 아이가 지루해하는 거예요. 욕심을 버리고 한 번에 한 가지만 제대로 알고 간다는 마음으로 보여주면 아이들도 지루해하지 않아요.”

아이들에게 박물관 여행이 좋은 이유

또한 엄마가 준비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박물관에 가기 전에 아이와 함께 정보를 찾는 게 우선. 만약 이튿날 서울 농업박물관에 갈 예정이라면 전시되어 있는 대표적인 농기구가 무엇인지, 아이가 가장 보고 싶은 유물은 무엇인지 함께 검색해본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 아이는 엄마에게 끌려 박물관에 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가게 된다.
“아이들은 자기가 관심이 있으면 일부러 보여주지 않아도 찾아가서 보더라고요. 그게 어떤 물건인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도 하고요. 민영이는 청주 고인쇄박물관을 좋아해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에 대한 자료가 어려울 것 같은데 생각보다 잘 이해해서 놀랐어요. 박물관에는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제작된 영상물도 있고요. 어른도 어려워서 외우지 못하는 용어를 아이가 다 기억하고 있어서 신기하다고 생각했죠.”
민영이는 우리가 흔히 ‘직지’라고 알고 있는 금속활자로 만든 인쇄물의 원래 이름을 단번에 말해주었다.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뜻조차 이해하기 힘든 이 이름을 아이가 왜 외웠는지 궁금했다. 민영이는 그냥 좋아서 기억했다고 대답했다. 박물관에 다니면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고, 그 정보를 찾고 기억하는 능력을 배운 민영이. 엄마가 가장 뿌듯해하는 부분이다.
“박물관에 다니면 좋은 게 참 많아요. 먼저 아이에게 신기하고 귀한 물건들을 많이 보여줄 수 있고요. 그런 것들을 찾아다니면서 아이들에게 정보 찾는 능력이 생긴 것 같아요. 혼자서 알아서 공부하니까 엄마는 편하죠. 사교육비 지출이 없어서 좋은데, 대신 문화비 지출이 많아요.(웃음) 그래도 얻는 게 있으니까 만족한답니다. 그리고 아이들하고 대화거리가 많아져서 관계도 좋아져요. 미술작품 전시회를 보고 나오면, 그 화가의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느낀 점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엄마하고 아이들 사이도 좁아지는 거죠.”
자녀 교육에 박물관 덕을 톡톡히 봤다는 오현애씨. 그녀의 박물관 여행은 별로 어렵지 않다. 일부러 공부하라고 강요할 필요도 없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보고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다 보면 아이가 스스로 박물관의 재미를 느끼게 된다.

오현애씨가 추천하는 박물관 5

1. 서대문 자연사박물관(http://namu.sdm.go.kr)

서울의 자연 환경은 물론, 지구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좋다.

2. 쇳대박물관(www.lockmuseum.org)

철물점 출신 관장님이 모아온 버려진 자물쇠로 만든 작품들이 멋지다.

3. 숙대 정영양 자수박물관(http://museum.sookmyung.ac.kr)

다양한 자수 작품을 볼 수 있는데, 그 문양이 예뻐서 아이들이 좋아한다.

4. 허준 박물관(www.heojun.seoul.kr)

의사가 되고 싶은 아이들에게 추천. 몸과 의학에 대해서 쉽게 설명해놓았다.

5.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http://museum.bok.or.kr/index.do)

경제에 대해서 이해하기 쉽게 꾸며놓았고, 새로 리모델링한 체험학습관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tip

박물관 견학서 쉽고 재미있게 쓰기

오현애씨는 아이에게 빈 종이 한 장을 들려준다. 대신 ‘친한 친구 만들어 오기’라는 미션이 있다. 전시물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가장 친한 친구처럼 잘 알아 오는 것이 그 임무. 아이는 그 종이 위에 전시물을 스케치하기도 하고, 정보를 메모하기도 하여 자기 느낌을 자유롭게 쓰면 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스크랩해서 모아두면 훌륭한 박물관 여행서로 완성할 수 있다.

박물관에 가면 맛있는 것을 꼭 먹는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박물관과 친해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아직도 아이들은 박물관을 공부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마련. 그래서 박물관 관람 후에는 마음껏 놀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박물관은 즐거운 곳이라는 인식이 생길 수 있다. 오현애씨가 사용한 방법은 맛있는 것으로 유혹하기. 아이들이 박물관에서 먹는 아이스크림이 제일 맛있다고 했을 정도. 아이들이 불평 없이 박물관 여행을 하게 한 노하우

아이와 함께 건축 여행 다니는 이용재씨 가족

“우리 문화도 이해하고 가족 간의 정도 깊어졌죠”

우리가 미처 돌아보지 못한, 하지만 알고 보면 의미가 깊은 우리네 건축물들. 거기에 얽힌 사연을 찾아 나선 아빠와 딸, 그들의 주말여행은 그래서 더욱 독특하다. 이틀 전에도 남도 쪽으로 건축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용재씨. 건축평론가인 그는 희끗희끗해진 머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국을 돌며 건축 답사를 다닐 정도로 에너지가 넘친다.
“우리나라 국보가 총 4백7개인데 그중에 건축물이 22개예요. 그런데 얼마 전에 숭례문이 불타서 없어졌잖아요? 그걸 보고 ‘덜컥’ 한 겁니다. ‘아, 이거 또 어느 미친놈이 국보에 불내는 거 아냐?’ 그래서 요즘 전국을 돌면서 국보 22개를 답사하고 있습니다.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야죠.”

딸을 위해 시작한 답사 여행

지금은 건축평론가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딸과 함께 건축 여행을 다니는 택시기사’로 더 유명했다. 올해 열여덟인 딸 이화연양이 아빠를 따라 전국의 이름난 건축물을 보러 다니기 시작한 게 벌써 10년 전 일이다.
“이제는 머리가 커서 아빠랑 다니는 걸 안 좋아해요. 얘랑 처음 여행을 갔던 게 1999년이었을 겁니다.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참 암담할 때였는데 아이를 차에 태우고 무작정 전국을 돌았어요. 한 달 동안. 그때부터 시작된 거죠. 툭하면 끌고 다녔으니.”
이용재씨가 딸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는 것은 그저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여주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그가 강조하는 건 딸이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인문학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다.
“2002년 택시 운전 일을 시작하면서 가능한 한 주말에는 일을 비우고 아이와 함께 여행을 다녔죠. 여행 초기에는 웅장하고 멋있는 건물만 보였어요. 그런데 차츰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사연을 보게 되더군요. 주중에는 답사 갈 곳에 대해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답사를 가서 아이에게 그곳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어요. 그랬더니 아이가 너무 좋아하는 겁니다. 재밌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흥미로워했지요. 그때부터는 아이가 먼저 가자고 조르더군요.”
건축물에서 ‘이야기’와 ‘미덕’을 끌어내 설명함으로써 딱딱하고 근엄하게 느껴지던 건물에 인간적인 활기와 친화력을 불어넣었다. 그때부터 딸의 눈엔 건축물이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살아 숨 쉬는 생명체로 느껴졌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러봤을 해인사 장경판전. 보통 사람들은 ‘그 유명한 팔만대장경이 있는 곳이구나’ 하고는 스윽 보고 지나가지만 그는 강화도에서 만들어진 팔만대장경판을 머리에 이고 3보1배를 하며 경남 합천까지 고행했을 수백 수만 고려 백성들의 피와 땀을 본다.
“얼마 전에는 담양 소쇄원을 취재하러 갔어요. 촬영을 하려는데 수학여행을 온 여고생 수백 명이 재잘재잘 떠들며 줄지어 오더군요. 아, 이거 오늘 날을 잘못 잡았구나, 생각하는데 자기들 사진만 몇 장 찍더니 오던 길로 그대로 5초 만에 가버리는 겁니다. 그저 웃음이 나더군요. 덕분에 취재는 방해받지 않았지만 말이죠.”
진부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진리, ‘아는 만큼 보인다.’ 이것은 이용재씨의 지론이기도 하다. 따라서 건축 여행을 갈 사람이 준비할 것은 오직 자신이 볼 건축물에 대한 정보를 머릿속에 넣어두는 일이다. 그렇게 알고 가면 그 건축물을 좀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고 생각지도 못한 감동을 받을 수 있다고.
“좋은 정보 하나 알려줄게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알죠? 색다르게 종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있어요. 먼저 종묘 맞은편에 있는 세운상가 건물을 찾으세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거기서 한번 내려다보세요. 정말 끝도 없는 우주가 펼쳐집니다. 서울이라는 복잡한 도시 안에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걸 아마 믿을 수 없을 겁니다.”
그가 추천하는 건축 여행은 결코 거창하지도, 돈이 많이 들지도 않는다. 게다가 자녀들에게 최고의 교육 효과도 있으니 일석삼조가 아닌가. 이용재씨는 자녀와 함께 가까운 곳에 있는 문화유적지부터 찾아보라고 권한다.
“국보 22개부터 다녀보세요. 미리 공부해 가야 하는 건 필수죠. 아이가 물어봤을 때 대답하지 못하면 창피하지 않겠어요? 아이들이 지금은 문화유적지 가는 걸 따분해하고 싫어할 수 있지만 나중에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었을 때 분명히 기억할 겁니다. 아버지가 가르쳐주고 싶어한 게 무엇인지. 학교에 보내고 과외를 시키느라 아이 얼굴도 못 보고 돈만 벌지 말고 아이를 위한 진짜 교육을 시작하세요. 함께 여행을 하면서 말이죠.”

이용재씨가 추천하는 건축 여행지 BEST 3

1. 경복궁 경회루, 근정전

수려한 세련미와 왕궁의 위엄이 살아 있는 완벽한 건축, 근정전 기둥에 기대어 서면 옛 조선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2. 절두산 순교 기념 성당

절두산 성지에 있는 성당으로 약 40년 전에 지어졌다. 전통 건축을 재해석하여 갓을 형상화하는 등 새로운 시도가 많이 보인다. 조선 후기에 순교한 천주교인들이 30명이나 묻힌 역사적인 곳. 2호선 합정역 7번 출구 한강시민공원 방향 도보로 10분.

3. 창경궁 명정전

정전(왕이 국가의 큰 행사를 치르던 곳)으로서는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하지만 짜임새가 있고 힘찬 형태를 한 조선 전기의 전형적인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아늑하면서도 웅장한 매력이 있다.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 도보로 20분.

tip

1. 주말은 가족을 위해 비워두자

가족과 행복한 삶을 꾸리기 위해 열심히 일한 당신. 주말에 늦잠으로 허무하게 하루를 보낼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데리고 카메라 하나 들고 가까운 고궁으로 나가자.

2. 여행지에서만큼은 든든한 선생님이 되자

답사 갈 곳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아보고 가는 것은 필수. 교과서 밖의 진짜 교육은 바로 아버지의 몫이다. 여행으로 조금씩 성장해갈 아이들의 미래를 그려보자.

3. 여행을 다녀온 후 답사 후기로 기록을 남기자

사진과 글로 남은 여행 기록은 기억에도 오래 남고, 나중에 가족들이 함께 펼쳐볼 소중한 앨범이 될 것이다.

이것만은 꼭 챙기자!

문화재청에 들어가 간단한 검색만 해도 건축물의 설립 년도나 역사 등을 쉽게 알 수 있다. 알면 알수록 감상의 깊이도 더해진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카메라와 수첩

카메라는 나의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본 것을 저장해놓기 위한 용도로 가져가는 것이다. 다녀와서는 나만의 답사 후기를 적어보는 것도 잊지 말자.

문화 사회적 이슈

해당 건축물과 관련 있는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에 대해 알고 간다면 그 감흥을 한껏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