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라가치 우수상 수상(논픽션 부문)

지금은 밤입니다. 하지만 이 방 어디에도 밤을 지배하는 어둠을 찾아볼 수 없네요. 도시는 밤이 되면 화려한 빛을 갈아입고 또 다른 제 모습을 뽐내지요. 밤을 낮처럼 누리는 것이 너무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낮은 더 밝게, 밤은 낮과 같이, 인류가 만들어 낸 빛은 그렇게 자연의 거대한 두 빛, 해와 달보다 더한 위력을 떨치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사람의 몸을 감지하여 따라 다니면서 어둠을 쫓아 줄 정도니까요.

하루에도 수많은 스위치를 켜고 끄며, 불 켜진 곳을 지나다니면서도, 빛을 특별히 의식하지는 않아요. 전구가 깜박이거나, 불이 나가 불편을 겪는 경우가 아니라면요. 이제는 공기나 물처럼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니, ‘편리하다’ ‘없으면 어떨까?’ 이런 생각도 안 해 봤네요.

『백열전구』라는 책을 보니 ‘백열전구’의 발명이 지금과 같은 밤의 혁명, 인류 생활의 혁명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까지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사건임을 알게 됩니다. 에디슨이 이 위대한 발명을 하기까지 어떠한 수고와 노력을 기울였는지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의미 이상의 다른 무엇들도 많이 담고 있어요.

첫 장 머리말은 에디슨이 마침내 백열전구 발명에 성공한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본문에 들어서면 에디슨과 백열전구 이야기는 1870년대부터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한 문장으로 끝나고, 당시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시대 상황이 전개됩니다. ‘미국 동부와 서부를 잇는 대륙횡단철도가 완성되고, 남북전쟁이 끝나자 남부가 전쟁 복구를 하는 동안 북부와 서부는 번영을 누리고, 중국과 유럽 사람 등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주와 자국 사람들의 이동이 활발했으며, 전신기에서 전화기로 통신수단에 큰 변화가 있었다. 영국은 산업화로 공장주와 노동자들이 경제적으로 양극화 현상을 보이면서 사회 문제가 심각해졌고, 영국과 프랑스는 서로 아프리카의 나라들을 식민지로 삼고자 경쟁했다.’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어요.

당시의 시대 상황을 발명 이야기만큼 비중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흐름까지 살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대 상황과 백열전구 발명의 의미를 연관 지어 생각해 봅니다. ‘통신수단의 발달로 세계의 소식을 빨리 접하게 되면서 다른 나라의 기술 발달이 자극이나 영향을 주었겠지, 산업화에 따른 빈부 격차를 느끼면서 에디슨은 실용적이면서 저렴한 불빛을 만들어내려 노력했겠지, 산업화는 어쨌든 경제 효율성과 많은 관계가 있으니 밤에도 실내를 밝힐 백열전구 발명에 대한 요구가 높았겠지’ 라는 생각들처럼 사회의 흐름은 에디슨의 발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기도 했을 것입니다.

당대 상황을 다각적으로 살피는 구성은 에디슨의 생애나 실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 것보다 에디슨을 살아 있는 인물로 느끼게 합니다. 마치 주인공 한 명만 나오는 연극을 보다가, 여러 인물들이 함께 등장하는 자연스럽고 풍성한 작품을 읽는 것도 같고, 큰 기사, 작은 기사, 가십 기사, 인물 인터뷰 등이 다채롭게 실린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 느낌도 듭니다. 큰 기사들에서 정보를 얻지만 귀퉁이 작은 기사도 눈길을 끄는 것처럼, 1870년대에 켈로그 사가 그래뉼라라는 아침 식사용 시리얼을 선보였다는 이야기가 흥미를 끄네요.

에디슨의 발명은 역사의 흐름 속에 두드러진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 또한 역사 속에서 이루어낸 것입니다. 인류 생활에 혁명적인 발명을 해낸 사람인 동시에 그도 다른 사람들의 인생과 함께 그 시대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며, 자신이 발명한 것들을 누리며 살기보다 동시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전 시대의 사람들이 남긴 생활 문화를 향유하며 살았던 것이지요. 에디슨이 밤마다 가스등 불을 밝혀 두고 백열전구 발명을 위해 연구를 했던 것처럼 말이에요. 가스등은 깜박거리고 연기와 그을음이 많아 실내등으로 적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에디슨뿐 아니라 영국의 조지프 스완 같은 사람도 백열전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에디슨은 정말 끈질기게 노력하고 애쓴 결과 마침내 발명에 성공을 한 것이지요. 필라멘트 재료로 사람 머리칼, 백금, 대나무와 코코넛 섬유질까지 사용하여 실패한 뒤 여러 달째 좌절하다가 아내가 바느질하는 실에 탄소 가루를 묻혀 전구에 넣어 1897년 마침내 13시간 넘게 방을 환히 밝히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세기 역사와 문화, 과학 등 전체적으로 중요한 부분들을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어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알찬 내용들이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게 들어 있지요. 2005년 볼로냐 국제 아동 도서전 논픽션 부문에서 라가치 상을 받은 책이기도 해요. 무엇보다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어요. 에디슨의 생애를 다룬 위인전 부분에서도 그러한 객관성이 알맞게 지켜지고 있어요. 자칫 작가가 부각시키고 싶은 인물의 위대성을 강조하기 쉬운데 말이에요. 이런 설명을 들으며 오히려 독자들은 인물에 대한 나름대로 평가가 되기도 해요. ‘장난으로 다른 사람 골탕 먹이길 좋아했네, 실험만 몰두하다 보니 가정에는 소홀했구나, 집념이 정말 대단하다’ 이런 생각들이 스쳐갑니다.

또한 이 책은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서도 ‘백열전구’ 발명이 인류의 생활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그 의미를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해가 진 뒤 도사리는 어둠의 위험 속에서 빛을 보존하려는 인류의 노력이 얼마나 간절했는지요. 불의 불안정과 위험은 빼고 빛만 만들어 내려는 꿈은 프로메테우스가 태양에서 횃불을 가져왔다는 신화를 떠올릴 만한 창조와 혁신이었습니다. 에디슨이 만든 ‘백열전구’는 하나의 발명품의 의미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두껍지 않은 그림책에 시원시원한 편집으로 많은 사진 자료들을 담고 있습니다. 오래된 사진과 그림들은 19세기 분위기를 물씬 풍기네요. 산업화로 인한 노동자들의 고통은 이탈리아 화가 로베르토 인노센티의 그림으로, 실내 조명의 낭만적 분위기는 프랑스 화가 빅토르 질베르의 그림으로 보여 주어 좀 더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풍부한 볼 거리를 제공하네요. 에디슨의 실험실 사진도 많이 실어 놓아서 발명의 현장감이 와 닿습니다.

인류가 이룬 어떤 발명품 하나라도 단순히 어느 날 번쩍 떠올라 뚝딱 만들어진 것은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결국 한 사람이 이룰지라도, 오랜 세월 많은 사람의 열망과 필요가 진정한 발명의 위대한 어머니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책 소개

에디슨이 발명한 백열전구는 사람들의 생활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백열전구로 대표되는 19세기 과학의 발전과 그 당시 사회적 변화를 다룬 책입니다. 백열전구 발명 전후의 역사와 사회 배경, 과학의 발전 정도 등 19세기 말 미국과 유럽 등지의 역사 흐름과 사회 모습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풍부한 사진 자료, 시대적인 배경이 잘 드러나는 세밀한 그림 들이 미국의 사회 모습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합니다. 금광 개발에 나서고 철도를 건설하여 미국의 동부와 서부에 대륙횡단철도가 완성되고 남북전쟁 이후 자유의 몸이 된 흑인 노예들이 공장 노동자가 되는 등 19세기 말 미국을 역사와 문화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의 빈곤한 삶의 모습, 유럽인들의 식민지 건설, 에디슨의 삶과 발명 과정의 정리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작가 소개 제니퍼 팬델  (Jennifer Fandel)  미국 미네소타 주립 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역사적인 인물을 다룬 전기와 발명에 관한 지식정보책 등 어린이 대상의 논픽션 책을 20권 넘게 펴 냈습니다. 『백열 전구』로 2005년 볼로냐 도서전 라가치 우수상(논픽션 부문)을 받았습니다. 지은 책으로 『마틴 루터 킹』『프랑크 로이드 라이트』『제임스 브라운』『파블로 피카소』『윌리엄 셰익스피어』『시의 이해(전 4권)』 등이 있습니다. 이상희    1960년 부산에서 태어나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었습니다. 지금은 시와 그림책 글을 쓰면서 외국 그림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원주에서 그림책 전문 꼬마 도서관‘패랭이꽃 그림책 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새끼 서 발』『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잭과 콩나무』『소 찾는 아이』 등이 있고,『마법 침대』『강물이 흘러가도록』등 영미권 그림책 200여 권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