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는 직업계高 편견 없어요”

21일 서울 강남구 서울로봇고 실습교실에서 독일 학생들과 교사, 한국 학생이 조를 이뤄 로봇을 제작하고 있다. 2013년 마이스터고로 지정된 서울로봇고는 독일 직업계고와 업무협약을 맺고 교사와 학생이 교류하면서 서로의 장점을 배우고 있다.

“This is(이것은)… 아, 뭐라고 설명하지.”

21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서울로봇고등학교’의 한 실습실에서 학생 한 명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날 실습은 서울로봇고 학생과 독일 학생이 함께하는 수업이었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두 나라 학생들은 로봇 제작 키트를 들여다보며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수업에 참여한 임경묵 군(17)은 “조이스틱과 초음파 센서를 활용한 ‘거미로봇’을 만들었다”며 “독일 학생들과 영어로 이야기하며 완성하는 과정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독일 뮐하임의 직업계고 ‘게오르크 케르셴슈타이너 슐레(Georg-Kershensteiner-Shule)’의 교사 2명과 학생 18명은 이날부터 일주일 일정으로 서울로봇고를 방문했다. 두 학교는 국제교류 협약을 맺었다. 올해 7월에는 한국 학생들이 독일을 방문했다. 두 나라 학생들은 1주일간 로봇소프트웨어 설계, 영어 프레젠테이션, 드론 제작과 레이싱 대회, 체육 등 다양한 분야의 합동수업에 참여한다.

○ 직업계고 편견? 독일엔 없다

학생들을 인솔해온 예시카 그라프 교사, 미르코 슈나이더 교사에게 “독일에선 대학 진학 목적의 인문계고가 아닌, 직업계고에 진학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어떠냐”고 물었다. 두 교사는 ‘질문이 생소하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이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직업계고는 성적이 낮은 학생이 가는 곳이 아니라 전문 기술인이 되기 위해 선택하는 학교라는 인식이 확고해 보였다.

그라프 교사는 “독일의 직업계고는 학사 운영이 유연하고, 진로 선택의 폭이 넓다”며 “학생들이 입학할 때 선택한 길만을 강요하지 않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직업계고 안에서도 졸업 후 바로 대학에 진학할 학생, 학교와 직장 생활을 병행할 학생, 기술만 충실히 배울 학생들이 다양하게 공존한다. 기술자가 되기 위해 입학해도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마음을 바꾸면 얼마든지 계열을 변경할 수도 있다.

독일에서 직업계고 진학을 택하는 이들은 50%에 조금 못 미친다. 한국에 비해선 높은 진학률이다. 특수 기술을 보유한 엔지니어를 존중하는 독일 사회에선 직업계고에 대한 선호도가 높기 때문이다. 게오르크 케르셴슈타이너 슐레 측은 “유럽 내에서도 다양한 학교와 교류하며 장점을 흡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 최신 장비와 실습 환경에 ‘호평’

“완전 쿨(cool)해요. ‘우우웅’ 소리를 내며 작동하는 금속공작기계도 구경했어요.”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한 독일 학생들은 서울로봇고의 ‘첨단시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학교 곳곳에는 로봇 제작에 필요한 장비와 재료가 가득하고, 방과 후에도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넉넉하다. 이런 시설에 독일 학생들은 “생각보다 훨씬 대단하다”며 연신 감탄을 자아냈다.

서울로봇고는 학업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경비가 무료다. 학비는 물론 동아리 활동에 필요한 각종 재료까지 활동비로 지원한다. 기술 명장이 되길 꿈꾸는 학생들이 마음껏 실력을 발휘하고 학교생활을 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전공 동아리 중 하나인 ‘CreRobot’은 직접 프레임을 제작해 창의적인 로봇을 만드는 모임이다. 각종 경진대회에서 수상을 이어가고 있다. 드론을 제작하는 ‘Dr.Drone’는 수업시간에 배운 이론을 바탕으로 드론 레이싱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옛 강남공고에서 2013년 마이스터고로 전환한 서울로봇고는 학문 간 ‘통섭’을 중시하는 교과과정이 특징이다. 지난해부터는 직업계고에선 보기 어려운 미술 과목도 신설했고, 내년부터는 ‘영어회화’도 교육과정에 포함된다. 기술을 배우는 학교지만 국영수는 물론이고 예체능까지 두루 섭렵한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취지다. 슈나이더 교사는 “짜임새 있는 기술 교육과정에서 배울 것이 많았다”며 “특히 방과후 활동과 실습교육이 어우러진 게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 교류 통해 서로의 장점 ‘벤치마킹’

현장에서 만난 독일 학생들은 시종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리거 레니 학생(18)은 “기술을 배우기 위해 직업계고에 진학했는데, 이 안에서도 세부전공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롱겐 야이 학생(18)은 “졸업 후 대학에 갈 계획인데, 기술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고교에 진학한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두 나라 학생들은 유창하지는 않지만 영어로 소통했다. 졸업을 앞두고 대기업 취업이 확정된 3학년 김현 군(18)은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한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의외로 대화가 잘 통해서 신기했고 독일 학생의 실력도 확인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기술 명장에 대한 존경심이 높은 독일과의 교류를 통해 학생들이 엔지니어로서의 자신감을 얻고, 세계무대에 대한 자신감을 키울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신상열 서울로봇고 교장은 “해외 학생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스스로 깨닫고, 세계적인 기술 명장이 되겠다는 꿈을 품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직업계고에서도 진학과 취업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다양한 시스템을 마련해 두고 있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인식도 달라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